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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기간 ===
==== 즉위 초반 ====
[[1403년]] 영락제는 환관들과 장수들을 시켜서 3개의 대함대를 편성, [[동남아시아]]로 파견한다. 이 함대는 자바 섬, 보르네오 섬, 필리핀, 베트남, 인도 남부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 파견되어 그의 즉위를 알리게 했다. 즉위 초기 그는 주변 대외국으로부터 패자로 인정받기를 원했고,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지역의 군주들한테도 인정을 받고 싶어하였다. 그의 위세에 눌린 [[말라카]], [[브루나이]]를 비롯한 [[자바자와섬]], [[보르네오]], [[필리핀]] 등의 부족국가와 족장들은 그가 재위에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중국]]에 조공 사절단을 보냈다. 이러한 사절 파견이 신통치 않으면 그는 즉시 해당국에 경고와 통첩을 보내기도 했고, 그의 정복전쟁이 실제 감행되고 있었으므로 동남아 군주들은 그의 위압에 저항하지 못하였다.
 
영락제는 [[티베트]]와 [[네팔]]에도 환관과 사절로 파견하여 [[명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조공을 거듭 요구하였다. 그 뒤 네팔 등에서도 수시로 사신과 조공이 오게 된다. 이어 중앙 아시아를 지나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의 투르키스탄까지 사절과 관료를 파견하여 명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할 것을 강요했다. 또한 [[일본]]에도 사절을 파견하여 종주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실권자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의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쓰시마 섬]] 등의 왜구를 잡아가다 [[난징]]으로 보내기도 했다. 아시카가가 있을 동안 [[일본]]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안가를 노략, 약탈하던 왜구들의 송환 명령에 적극 호응하여 이들을 중국 조정에 보내어 벌을 받게 할 만큼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그러나 아시카가의 후임자들은 중국의 종주권과 조공을 거절했고 그의 사후 세력이 약화된 명나라는 원나라 때의 현해탄 카미카제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일본원정을 반대, 일본원정을 포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