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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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집안은 [[장쑤 성|강소성]] 고우(高郵)에 적을 뒀지만, 부친이 [[요동성]]에서 근무하여 요동으로 이적하였고 오삼계는 [[1612년]] 요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공적으로 무장에 등용된 뒤 출세를 거듭하여 [[1641년]]에 제독으로 요서의 영원(寧遠)([[랴오닝 성]] 흥성시)에서 명군을 지휘하여 청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오삼계는 [[청나라|청]]이 건국되었을 때 [[산하이관|산해관]]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1644년]] 농민군을 이끌고 명을 멸망시킨 [[대순]]의 [[이자성]]이 [[북경]]을 물리칠 때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투항하였다. 그 후, 청군은 오삼계를 길잡이로 하여 관내로 들어왔다.
 
[[파일:Qing Seal for General Who Pacifies the West.jpg|섬네일|일반 핑시 인 (「平西大將軍印」,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ᠸᠠᡵᡤᡳ<br>ᠪᡝ<br>ᠨᡝᡮᡳᡥᡳᠶᡝᡵᡝ<br>ᠠᠮᠪᠠ<br>ᠵᡳᠶᠠᠩᡤᡳᠶᡠᠨ ᡳ<br>ᡩᠣᡵᠣᠨ}}|wargi be necihiyere amba jiyanggiyūn i doron}})]]
[[1653년]] [[효장태후]]의 주선으로 [[홍타이지]]의 막내딸 [[화석건녕공주]](和碩建寧公主)와 오삼계의 아들 [[오응웅]]이 혼인하였다. [[오응웅]]은 부마의 신분으로 조정에 진출하였으나, 실은 조정이 오삼계를 견제하기 위한 인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