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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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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적, 체력적 결함을 지닌 사람의 증가(산업혁명 이전, 개발도상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에는 의료시설의 부족으로 영유아 사망률이 증가)
== 나라별
=== 유럽 ===
[[유럽]]의 인구 증가율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이미 감소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전쟁 직후인 [[1946년]]부터 [[1965년]]에 이르기까지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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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까지는 많은 나라에서 출산율이 계속 저하했지만, [[1987년]]부터는 출산율이 반전(反轉) 혹은 정체(定滯)하는 나라가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이나 [[스웨덴]] 등은 [[1990년]]에 인구 치환(여성 1명당 2.1명) 수준을 회복했지만, 그 후 다시 출산율이 저하했다. 많은 나라에서는 출산율 회복을 정책 목표라고는 하지는 못하지만, 육아 지원 등은 아동·가족 정책으로서 행해지고 있다.
[[남유럽]]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합계출산율]]이 급격히 저하해, [[199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1.1대라고 하는
[[동유럽]]과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이 [[노동]]을 했던 [[공산주의]] 사회의 특징 덕분에<ref>[[소설]]《[[태백산맥]]》을 보면 [[북한]]의 여성 [[전차]]운전수가 [[평양]] 시내에서 묵묵히 노동하는 모습을 보고 미선과 이학송이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옛 [[공산권]]에서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이 노동을 함으로써 [[평등]]을 실천했던 것이다.</ref> [[공산주의]] 붕괴 전에도 여성들이 많은 출산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특히 [[동독]]은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을 만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갔기 때문에 [[1961년]]까지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은 다자녀 가정의 부모에게 [[메달]]을 수여하며 출산을 장려해서 출산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했다. 그러나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러시아의 출산율과 평균 수명이 감소했고 러시아의 인구는 [[1993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의 인구는 2008년까지 660만 명이 줄어들었다.<ref>[http://news.nate.com/view/20100106n17293 <러시아 인구 15년 만에 증가>]</ref>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러시아의 출산율과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이민자도 늘어나서 러시아의 인구는 2009년 8월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ref>[http://news.nate.com/view/20091231n11680 ‘출산 증가’에 우쭐한 푸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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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
[[일본]]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합계출산율이 2 이하로 떨어졌으며,
[[중화민국]]에서는 출생아수 급감으로 2008년에는 출산율이 1.1명이었으나, 또 다시 감소세가 지속 돼 2009년에는 1명으로 1.08명이었던 대한민국(남한)의 2005년 최저 출산율 기록을 경신해 세계 최저의 출산 국가가 되었다.
=== 대한민국 ===
[[1955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남한)의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6.1명이었다. 이승만 및 윤보선 정부에서는 출산을 장려했지만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에 의해 [[196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인 [[가족계획]]이 실시되면서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5.2명,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4.7명이었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가족계획]]을 매우 강화시켜서<ref>1970년대 중반까지 [[베이비 붐]]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구 규모의 증가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더욱이 초기(1955-1964년) 베이비 붐 세대가 출산하는 1980년경에는 제2차 베이비 붐 현상까지 나타났다.</ref> [[1984년]]에는 2명 미만인 1.74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음해인 [[1985년]] 1.66명 수준으로 약간 떨어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된 정책으로 마침내 [[1987년]] 출산율이 1.53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6년]] [[8월]] 김영삼 정부가 출산정책을 산아제한정책에서 산아자율정책으로 전환했으나 출산율은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하락하였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에 따른 여파로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에 즈문둥이 출산을 장려하여 일시적으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지만 [[2001년]]에는 1.30명의
{{인용문|1950년대: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 <br> 1960년대: 3·3·35운동 -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 <br>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br> 1980년대: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br> 1990년대: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br> 2000년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br> 2010년대: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대한민국 보건복지가족부|보건복지가족부]], 인구보건복지협회<small><small>(구 대한가족계획협회)</small></small>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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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 {{국기|일본}} || 1.36 || 1.39 || 1.39 ||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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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 {{국기|대한민국}} || 1.47 || 1.22|| 1.24|| 1.29<ref>[http://news.donga.com/Economy/3/01/20130226/53310662/1 한국, 11년만에
|-
| 227 || {{국기|중화민국}}<ref>[http://pluskorean.com/news/detail.php?number=86601&thread=22r15r03 대만 출산율 꼴찌]</ref> || 1.76 || 1.21 || 1.08 ||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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