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미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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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오에이 8년), '일본국 준삼후 원도의'라는 명의로 하카타(博多) 상인과 승려를 사절로 명에 파견하였다. 가네요시 친왕의 세력은 이미 몰락했으므로 [[건문제]]는 요시미쓰를 일본국왕으로 책봉했다. 동시에 명의 [[대통력]](大統暦)이 일본국왕에게 수여되었고, 양국의 국교가 정식으로 수립되었다. 일본국왕이 황제에게 조공하는 형식을 취한 감합무역은 1404년(오에이 11년)부터 시작되었고, 또한 명의 요청으로 요시미쓰는 왜구를 진압하였다.
 
[[1402년]] [[음력 7월]]에는 [[조선 태종|조선의 태종]]이 작년에 해적 소탕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교린의 신의를 더욱 도탑게 해 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그에게 보내었다.<ref>[[#태종실록 1431|태종실록 (1431)]]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106012_001 1권, 태종 1년 6월 12일 기사 1번째기사] {{웨이백|url=http://sillok.history.go.kr/id/kca_10106012_001 |date=20160129184709 }}</ref>
견당사 폐지 이래 독자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던 공가 사회에서는 명 황제의 신하가 되는 조공 무역에 대해 불만과 비판이 많았으나 요시미쓰의 권세 앞에서는 공공연하게 발언하지 못하고 일기 등에 기록해 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