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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18시,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체포안에 대한 재가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와 동시에, 전두환의 지시를 받은 허삼수, 우경윤은 정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했다. 19시, 이들은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50명을 투입했다. 33헌병대 병력은 공관을 경비하던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병력을 제압하고 공관에 난입했다.<ref>http://m.nocutnews.co.kr/news/1148681</ref> 이후 공관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반란군측 [[박윤관]] 일병이 사살당했다.<ref name="사병">{{뉴스 인용|저자=고나무·김선식|제목=잊혀진 죽음, 정선엽·박윤관 두 사병도 기억하라|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8473.html|날짜=2013년 5월 21일|확인날짜=2016년 2월 2일|출판사=한겨레}}</ref> 19시 21분, 반란군은 정총장을 [[국군기무사령부|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21시 30분경, 전두환, 유학성, 황영시 등은 다시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했다.
 
이후, 신군부 세력은 총장의 강제연행이 부당하다며 원상복귀를 주장하던 3군사령관 [[이건영 (1926년)|이건영]] 중장,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소장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 등에 대해 하극상을 감행하고,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며 연행했다. 하나회 회원이던 박희도 준장이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 병력과 최세창 준장이 지휘하던 3공수특전여단, 그리고 장기오 준장의 제5공수특전여단이 서울로 출동했다. 또한 노태우 소장은 자신의자신이 지휘관이던 9사단 29연대를 중앙청 앞에 집결시켰다.
 
1공수특전여단은 행주대교에 있던 30사단 병력을 무력화시킨 후 곧장 서울로 달려갔다. 얼마 후, 1공수특전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공격, 국방부 50헌병대 경비병력으로 근무하던 [[정선엽]] 병장을 사살한 후<ref name="사병"/> 국군 수뇌부를 체포했다. 그리고 국방부 청사에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찾은 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끌고갔다. 한편 3공수특전여단은 3여단의 영내에 있던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을 완전히 장악하여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사살하고,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