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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의 궁예를 실각시킨 [[고려 태조]]는 신라에 대하여 적극적인 우호 정책을 내세웠다. 그의 신라에 대한 우호 정책은 신라인들을 회유하는 데 유용하였다. 실제로 태조는 [[후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자 고려군을 파견하여 신라군을 도와 후백제군과 같이 맞서 싸움으로써 신라인들의 신망을 얻었다. 그 결과 [[마의태자]] 등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순왕]]은 신라의 백성들을 더 이상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신라]]를 [[고려]]에 귀순시켰다. [[고려 태조]]는 [[경순왕]]을 태자보다도 더 극진하게 예우하며 수도 [[서라벌]](徐羅伐)을 [[경주]](慶州)로 개칭하고, 신라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경순왕]]의 사촌 여동생인 [[신성왕후]]와도 혼인하였다. 이후 고려는 신라와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하였다.
 
고려 제 8대 국왕인 [[현종]]은 신라 왕실의 외손이고, 이후 왕위를 계승한 이는 모두 [[현종]]의 자손이므로 고려 왕실의 정통성은 신라로부터 나온다.<ref>삼국사기 권제12 신라본기 제12 경순왕 논</ref>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와 달리 스스로 귀순함으로써 백성을 살렸고, [[고려]]로부터 수도와 문화가 보전되며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474년 동안 신라 왕실은 정통성을명맥을 지킬이어갈 수 있었다.
 
== 통치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