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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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통일'''이란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후
신라가 차지하지 못한 [[만주]]의 고구려 옛 영토에는 30여년의 공백기를 거친 뒤 [[발해]]([[698년]] ~ [[926년]])가 들어섰다. 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는 [[신라]]가 아니라 [[고려]]이며, 신라의 '삼국 통일'
또한 신라의 삼국 통일은 외세를 끌여들였다는 점에서 20세기 민족주의에 기반한 민족사학자를 중심으로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 민족의 정체성은 [[고려]] 이후에 완성되었으며, [[한반도]] 내에서 민족 국가의 정체성은 [[고려]]로부터 출발하여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비판은 학계 주류로는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 배경 ==
신라는 [[6세기]] [[법흥왕]] 때에 이르러 율령(律令)과 관제를 반포하고, [[이차돈]]의 순교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여 백성의 사상적 통합을 도모하였다. [[진흥왕]]은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백제 성왕|성왕]]을 전사시킴으로써 한강 유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가야 연맹 중 마지막으로 남은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여 남서쪽으로는 [[낙동강]] 서쪽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동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북서쪽으로는 [[황해도]] 지역까지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진흥왕]] 집권 이후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의 삼국 간 항쟁을
== 전개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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