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08번째 줄:
밝고도 씩씩한 기상 영원토록 빛나리<br>
 
통제사(統制使) 충무이공(忠武李公)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篆題>
명량대첩비는 남방인사들이 전적지인 명량에 공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다. 숙종11년(1685년)3월 예조판서 이민서 짓고, 판돈녕 부사 이정영이 쓰고 홍문관대제학 김만중이 전자를 썼다.<br>
 
조선국(朝鮮國) 통제사(統制使) 증시(贈諡) 충무공(忠武公)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홍문관대제학(兼 弘文館大提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경연·춘추관·성균관·의금부사(知經筵·春秋館·成均館·義禁府事) 이민서(李敏叙) 지음.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행판돈녕부사(行判敦寧府事) 이정영(李正英) 씀.
숭정대부(崇政大夫) 행지돈녕부사(行知敦寧府事) 겸 지경연사(兼 知經筵事)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衞都摠府都摠管) 김만중(金萬重)
전액(篆額)을 씀. <br>
 
</ref>을 살펴보도록 하자.<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