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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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 ===
[[헌강왕]]의 후예라 전하는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하는 태사공파(太師公派), [[원성왕]]의 후예라 전하는 김순웅(金順雄)을 파조로 하는 장군공파(將軍公派), [[김알지]]의 후예라 전하는 김위영(金魏英)을 파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 [[1785년]]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을 원용하여 [[경순왕]]의 제3자라 추정하는 김명종(金鳴鍾)을 파조로 하는 영분공파(永芬公派), 제4자라 추정하는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하는 대안군파(大安君派), 조상에 대한 계통은 확실하지 않으나 [[경순왕]]의 후예라 전하는 김장유(金將有)를 파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로 크게 분파되었고, 이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작은 지파(支派)로 분파되었다.
==== 대안군파(평장사공파) ====(평장사공파)
* [[경순왕]]의 4자로 추정되는 시중시랑(侍中侍郞) '''김은열'''(金殷說)을 파조로 한다. 그는 [[고려]]초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고 한다.<ref>일운(一云) 경순왕 제2자라 한다.</ref>
** 6세손 김봉모(金鳳毛)가 [[고려]] 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정평공(靖平公)의 시호를 받았다.<ref>《고려사》에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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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공파 ====
* [[원성왕]]의 후예 [[고려]] 초 장군(將軍) '''김순웅'''(金順雄)을 파조로 한다.<ref>《고려사》에 신라 종성(宗姓)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인 [[원성왕]] 후예라 한다. 또 김지우 묘지명(金之祐 墓誌銘)에도 신라 [[원성왕]] 후예라 한다.</ref>
==== 영분공파((벽상공신 내사령공파) ====(벽상공신 내사령공파)
* [[경순왕]]의 3자로 추정되는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파조로 한다.<ref>조선조 말에 와서 김영분(金永芬)과 김명종(金鳴鍾)을 동일인이라 하나, 최근에 들어서는 별도 인물이라 한다. 김영분(金永芬)은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으로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라 한다.</ref>
** 5세손 김예겸(金禮謙)이 [[고려]]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내사령(內史令)을 역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