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꾸이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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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쩐 왕조가 쇠퇴한 것을 이용하여 제13대 황제인 [[쩐 소제|소제]](少帝)를 폐위하여 제위를 찬탈하였다. 국호를 대우(大虞)로 하고, 자신의 성인 레(Le)씨를 호씨(Ho)로 고쳤지만, 아들 [[호한트엉]](Hồ Hán Thương)에게 양위하여 태상황으로 칭하였고, 베트남 최초의 지폐를 발행하였고, 베트남 고유 문자인 쯔놈(Chữ Nôm)을 이용하여 문학을 장려하는 등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명나라]]의 [[영락제]]는 베트남 쩐 왕조의 왕족을 괴뢰 군주로 옹립하였고, 호계리가 영락제가 옹립한 군주를 인정하지 않았고, 1406년에 베트남 쩐 왕조 부흥을 구실로 삼아서 명나라군이 침공하자, 다음 해에 베트남의 수도 [[타인호아]]가 함락되었고, 호계리, 호한창 부자는 하틴에서 명나라군에 사로잡혔다. 호꾸이리는 호한트엉, 호응우옌쯩과 함께 명나라의 수도 [[금릉]]으로 끌려갔는데,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일설엔 난징에서 처형을 당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로는 영락제의 사면을 받아 광시에서 관리로 일했다고도 한다.
 
== 기년 ==
 
{{토막글|베트남|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