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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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음력 9월 7일]]) 조선 수군은 벽파진 근처에서 일본 수군과 접전을 하여 물리쳤다. 이에 분한 일본 수군은 조선 수군이 13척뿐임을 알고, 해상의 적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경성으로 곧장 올라가기로 마음 먹는다. 이에 이순신은 일본군이 조선군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들을 임하도(林下島) 유인하고자 했다.
[[파일:회본태합기 명량해전도-뱃머리를 잇대다..jpg|섬네일|250px|회본태합기 명량해전도-좁은목에 뱃머리를 잇대다. 좁은목을 막은 부대는 난중일기의 기록처럼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파일:임하도좁은목-울돌목으로들어가는목.jpg|섬네일|임하도좁은목임하도의 좁은목-울돌목으로 들어가는목]]
[[파일:임하도좁은목-울돌목으로들어가는목.jpg|섬네일|임하도의 좁은목-울돌목으로들어가는목]]
 
이에 대해 “김중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