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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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조선조정에서는 이문욱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선조실록 89권 선조 30년 6월 2일조에 의하면, 선조가 “이문욱(李文彧)은 누구의 아들인가?”라 물었더니 [[류성룡|유성룡]](柳成龍)이 “알 수 없습니다.”라 말했다. 이에 선조는 “그와 같은 인물이라면 우리쪽으로 오게 하라. 비록 적진에 있는다 하여도 왜적의 적정을 통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즈음 같은 때에는 그렇게 하여도 좋을 때일 것이다.”고 했다. 또한 선조실록 89권 선조 30년 6월 18일조에 의하면, [[윤두수]](尹斗壽)가 선조에게 “이문욱(李文彧)이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분명 왜군 진영에서 나와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통사 박우춘(朴遇春)은 중국어와 일본어를 잘 하니 박우춘으로 하여금 이문욱을 불러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조선 조정은 이문욱의 정체가 불분명함에도 일본군의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 이문욱을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손문욱의 정체는 밝혀내기 어렵다. [[김계생]]도 이미 고니시의 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바, 그가 이용순(李用淳)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이문욱의 출신 또한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히데요시가 이문욱을 고니시의 부장으로서 부산으로 보냈다는 것은, 이문욱이 일본군 진영을 빠져나와 조선 진영으로 투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일본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일본 내부 사정에 능통한 인물로 포장하기 위해서, 히데요시의 양자를 사칭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정말로 히데요시의 양자인 경우, 히데요시의 밀정으로 조선에 들어와 조선과 일본 조정을 오가는 이중간첩이었을 수도 있지만, 일본 내 이문욱과 히데요시의 관계를 증명해줄 문헌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없다.
 
있, 만 증거는 전혀 없 일본 국내 기록에서 이문욱에 규ㅏㄴ한다.
 
일부 다큐에서는 이문욱(손문욱)이 일본 조정으로부터 거제도를 다스리는 호장으로 봉분되었다는 내용도 있어, 그가 경북 청도에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이라는 기록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