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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려 태조]]는 천년 국가였던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기리기 위해 자신보다 먼저 경순왕의 어진을 제작하였고, 그 복사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어진이 되었다. <ref>http://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00602/28785354/1 '비운의 경순왕' 초상화 첫 공개, 동아일보, 2010</ref> 고려왕의 어진이 조선 [[세종]] 때 불태워지거나 땅에 묻혀버린 것과 비교하면, 신라의 귀순을 결정했던 경순왕의 어진이 [[조선시대]]까지 보전된 것은 멸망 후에도 신라 [[왕실]]은 존숭되었음을 의미한다.<ref>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7/02/75397/ 신라 경순왕, 나라를 버려 나라를 얻다</ref>
한편, 신라의 귀순을 반대했던 [[마의태자]]는 통곡하며 [[경순왕]]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고,
[[고려]] 제 8대 국왕인 [[고려 현종|현종]]은 신라 왕실의 외손이고, 이후 왕위를 계승한 이는 모두
== 통치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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