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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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670년]]-[[676년]]
|장소 = 한반도
|결과 = [[신라]]의 승리대승리
|이유 = [[당나라]]의 [[한반도]] 전지역 편입 시도
|교전국1 =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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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나당 전쟁'''(羅唐戰爭)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전쟁이다. 신라는 이 전쟁에전쟁에서 최종 승리함으로써 [[삼국 통일]]을 이루고,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중·남부에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 배경 ==
[[648년]]([[진덕여왕]] 2년), 신라와 당나라는 양국이연합군을 연합하여결성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정복한 후에 [[대동강]]을 양국의 경계로 할 것을 합의하고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정복한 후에 신라와의 약속을 어기고, 신라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면서 신라를 포함한유도하면서 [[한반도]] 전지역을 당나라에 편입시키려 하였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패망한 뒤, 당나라는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비롯한 5개 도독부를 설치했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9개 도독부를 설치하여 당나라의 영토로 기정사실화하려편입을 시도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또한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 전인 [[663년]]([[신라 문무왕|문무왕문무대왕 3년]])에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하고, 문무왕을문무대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당(唐)이 신라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신라를 자국의 일개 지방행정구역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아직 [[고구려]]가 건재했기 때문에 신라는 당나라와의 직접 마찰을 피하였다. 그러나,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신라를 관리하도록 하여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의도를 드러내자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