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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秋美愛, [[1958년]] [[10월 23일]] - )는 [[대한민국]]의 [[판사]] 출신 [[법조인]], [[정치인]]이다. 헌정 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이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으며, 제67대 [[가장대한민국의 ㅁㅊ년이다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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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이던 1997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는 지역감정이 심하던 때였다. 직전 대통령 선거인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제14대 대선]] 때는 야당이던 평민당 운동원들이 대구 유세를 하다 돌을 맞기도 하던 때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23100003&ctcd=C03|제목=‘친문’이 선택한 추미애 ‘친노’와의 14년 애증사|확인날짜=2016-09-05}}</ref> 그러나 추미애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 저돌적으로 선전하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언론으로부터 ‘추다르크’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제16대 대선]]를 앞두고 펼쳐진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그가 지지율이 낮을 때부터 지지하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난 후, 노무현의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를 위한 움직임(이른바 후단협 사태)이 일어났을 때도 후보 교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또한 대통령 선거에 임해서는 노무현 후보 캠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의 당선에 일조하였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이던 시절에는당선되자 당선자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었다방문했다.
 
하지만 이후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노무현과 정치적으로 헤어지게 되었다결별하였다. 한편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였다. 그러나추진하였으나, 같은 당 의원이었던 추미애는 "①  탄핵  대신  개혁으로  지지층의  동요를  막아야 한다. ②  탄핵  찬성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으니  현혹되면  안 된다. ③  그래도  탄핵을  강행하면  역풍을  맞아  총선에  참패할  것이다."라는 ‘3불가론’을 내세우며 탄핵에 반대하였는데, 당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탄핵에 반대한 2인 중 한 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4&aid=0000086957] YTN, 민주당, "조건부 탄핵 발의" 결정, 2004-03-05</ref>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반대하는 추미애에게 “당내  2인자가  당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너 혼자 잘났냐” 등 비난을 하였고, 결국 민주당의 당론은 탄핵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당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소속 의원 2명의 서명까지 받아 탄핵을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자 추미애는 "감옥 간 분들 표까지 긁어모아 탄핵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숯댕이(범죄혐의로 수감된 의원)가 검댕이(노무현 대통령)를 나무랄 순 없다. 민주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가 기꺼이 표를 드리겠다." 며 결국 당론에 따라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5&aid=0002639843 중앙일보, 서소문포럼, 2016-08-29]</ref> 이후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다. 한편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추미애에게 맡겼는데, 추미애는 탄핵 반대의 압도적 여론을 체감하고선 민주당이 탄핵에 동참한 것에 대해 당의 선대위원장으로서 당을 대표하여 사과하였다. 그리고 사과의 의미에서 3보1배를 하였다. 그러나 탄핵반대 여론의 역풍을 맞은 민주당은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리고 이때 추미애 본인도 낙선하였다. 훗날 추미애는“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다음 해 실시된 18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였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실시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2015년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의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같은 해 말에 벌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사태 때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판하며, 당에 잔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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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 및 비판 ==
=== 공직선거법 위반 ===
2016년 12월 23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이상윤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위반(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추미애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추미애는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기자 간담회에서 "16대 의원 시절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 서울동부지법 존치를 약속받았다"고 허위사실을 알렸으며, 총선 공보물에 '법원행정처장에게 동부지법 존치 약속을 받아낸 추미애 의원' 등의 허위사실을 기재하였다.<ref>{{뉴스 인용|저자=이효석|제목='선거법 위반' 추미애 대표 벌금 80만원…의원직 유지(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23/0200000000AKR20161223116751004.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6년 12월 23일}}</ref> 2017년 3월 21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이상주 부장판사)도 추미애에게 원심 판결과 같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황재하|제목='선거법 위반' 추미애 대표 2심도 벌금 80만원…의원직 유지|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1/0200000000AKR20170321112700004.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7년 3월 21일}}</ref>
 
2017년 3월 21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이상주 부장판사)도 추미애에게 원심 판결과 같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황재하|제목='선거법 위반' 추미애 대표 2심도 벌금 80만원…의원직 유지|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1/0200000000AKR20170321112700004.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7년 3월 21일}}</ref>
 
=== 문재앙 댓글은 범죄 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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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 더불어민주당 혁신성장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8년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 2020년 1월 ~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
 
==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