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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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682년]]
|사망원인= 노환
|매장지= [[낙양]] [[북망산]]<br />[[부여 능산리 고분군]](가묘, 假墓)
|국적= [[남부여]] → [[당나라]]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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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
'''부여융'''(扶餘隆, [[615년]] ~ [[682년]])은 [[남부여]] 태자이자 [[당나라]] 장군이다. [[자 (이름)|자]]는 융(隆)이다. '''숭'''(崇)이라고도 한다.<ref>《[[당회요]]》, 《[[통전]]》(通典). [[당 현종]]의 이름인 이융기(李隆基)를 [[피휘]]</ref> 남부여 멸망 후 [[당나라]]에 귀순하여 남부여 부흥운동 토벌에 협조하고 당나라의 남부여군공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남부여 유민들을 약탈하였다. 당나라에서 광록대부 태상원외경 겸 웅진도독 대방군왕까지 임명됐으나, 당의 [[웅진도독부]]는 [[신라]]에 의해 한반도에서 축출되어 요동으로 이주했다. 부여융이 마지막 태자인지에 관해서는 학설 대립이 있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