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Enjoy1012 (토론 | 기여)
→‎사건의 발단: 내용변경
태그: m 모바일 웹
Enjoy1012 (토론 | 기여)
내용변경
태그: m 모바일 웹
26번째 줄:
|조사 =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 만료
}}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에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초등학교]]학생이 [[개구리|도룡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을 말한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30&aid=0000005008 "아이들 살해된 이유라도 알고 싶다"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왜곡된[[왜곡]]된 것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사건 발생일인 [[1991년]] [[3월 26일]]은 [[5·16 군사 정변]] 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일로[[선거]]일로 [[임시 공휴일이었다공휴일]]이었다.
 
5명의 [[초등학교]]학생이 그것도 같은 날 동시에 실종된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장을[[파장]]을 일으켰고,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3년]]에는 [[KBS 제1TV|KBS 1TV]]의 [[공개수배 사건 25시|사건 25시]]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심층적으로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공중전화 카드, 엽서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까지 대대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남녀노소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할 정도였다.
 
당시 정부는 [[경찰]]과 [[군인|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전국적으로 수배 전단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유골]]이 발견되어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미제사건]]으로 남았다.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
 
== 사건의 발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