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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동]]은 [[고구려]]가 자국에 편입한 백제영지를 구성으로 명명한 것은 고어에 “크다”는 뜻의 “말아”(예:말매미, 말잠자리)를 한자음 駒(구)로 표기한것으로 풀이된다. “마라” 또는 “말”은 마루의 동의어로서 크다(大) 높 다 (高, 上, 예, 산마루)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때, 신라 때 구성을 거서로 고친 것도 크다는 본래 의미의 동의어로 알려져 있다. 구성은 큰성(대성) 또는 마 라재(높은 곳)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풀이되며 본래 [[고구려]]의 구성(駒城)에서 유래된 [[용인시]] 최초의 행정지명이다.
 
[[동백동]]은 본래 용인현 동변면(邊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동막(東幕)과 백현(栢峴)을 합치고 두마을 명칭의 두문자를 합쳐서 동백리라 하였으며2005. 10. 31일 구청개청에 따라 동백동으로 변동되었고 중동은 본래 용인현 동변면(邊面)에 속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시 중동(中洞) 일원을 중리로 고쳤으며 2005. 10. 31일 구청개청에 따라 중동으로 변동되었는데 법정동은 동백동으로 되어 있다.
 
[[상하동]]은 본래 용인현의 동변면(邊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될시 상지석(上支石), 하지석(下支石)과 수원동(壽院洞)을 병합하고 상·하지석의 이름을 따서 상하리라 하였으며, 2005. 10. 31일 구청 개청에 따라 상하동으로 변동되었다. 구성면의 중리 마을에 있던 어정(漁汀) 마을은 중동, [[상하동]]으로 분동되어 중동은 [[행정동]] [[동백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어정(漁汀) 마을은 1995년 어정(御井, [[어정동]]) 마을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변경된 지명을 임금님이 마시던 우물이란 뜻을 가진 고유지명으로 바로잡은 것이다.
 
[[신갈동]]에 딸린 동 중의 하나(행정동명과 일치). 본래 용인현 구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할 때 역촌일부, 신촌, 미동, 갈천, 상촌, 상관곡리 등을 합치고 신촌과 갈천의 첫 자를 따서 신갈동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