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61번째 줄:
신라는 [[6세기]] [[법흥왕]] 때에 이르러 율령(律令)과 관제를 반포하고, [[이차돈]]의 순교를 거쳐 [[불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내부의 결속을 다지며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여 국력이 강해졌다. 이 시기에 신라는 [[금관가야]]를 통합하였고, 국호를 사로국, 서라벌에서 덕업을 일신하고 사방에 망라한다는 뜻의 '신라(新羅)'로 개칭하였다.
 
법흥왕의 뒤를 이은 [[진흥왕]]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여 백성의 사상적 통합을 도모하였다. 신라의 [[진흥왕]]은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를 승리로 이끌고 [[백제]] [[백제 성왕|성왕]]을 전사시킴으로써 한강 유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가야 연맹 중 마지막으로 남은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여 남서쪽으로는 [[낙동강]] 서쪽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동북쪽으로는 [[함경남도]], 북서쪽으로는 [[황해도]] 지역까지 신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진흥왕]] 집권집권한 이후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의 삼국 간 항쟁을 일방적으로 주도할 만큼 강국이 되었고,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던 기간에는 [[진골]]에 속하는 왕족인 [[김춘추]](훗날 [[태종무열왕]])가 [[가야]]계 세력의 필두인 [[김유신]]과 함께 신흥 세력으로서 집권 체제를 강화하며 국가의 내부 결속을 다졌다.
 
== 전개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