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괘서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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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수사에 [[소론]]이 연루되면서 [[노론]]이 득세하게 되고, [[탕평책]]의 균형이 깨지는 계기가 된다. 득세한 노론이 당시 대리청정하던 사도세자에게 소론 잔당을 잡아들이라고 상소를 하자, 노론과 사도세자의 균열이 생겼다고 알려졌으나 실상은 다르다. 당시 사도세자는 영조의 뜻에 따라 노론의 상소를 거부한 것에 불과하다. [[이광좌]]의 추탈이나 [[박문수]], [[이종성 (1692년)|이종성]] 등 소론 완론의 인사를 보호하려 한 것은 영조의 뜻을 따른 것이다. 실록의 기사를 살펴보면 나주괘서사건 당시 [[영조]]와 [[사도세자]]의 뜻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숙청}}
{{토막글|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