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뷰트 백작 존 스튜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40번째 줄:
|서훈 = [[카터 훈장]]<br />추밀원
}}
'''제3대 뷰트 백작 존 스튜어트'''(John Stuart, 3rd Earl of Bute, [[가터 훈장|KG]], [[추밀원 (영국)|PC]], [[1713년]] [[5월 25일]] - [[1792년]] [[3월 10일]])은 [[영국]]의 정치가, 귀족이다.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조지 3세]]가 황태자[[웨일스 공]] 시절에 가정교사를 맡았다. 1760년 조지 3세의 즉위 후 국왕의 후원으로 정치권에서 빠르게 승진하여 1762년 5월 총리에 취임했다. 반 정당 정치인 ‘애국왕’의 이념에 입각하여 [[로버트 월폴]]부터 ‘[[휘그당 (영국)|휘그당]] 과두 지배’를 종식시키고 만년 야당인 [[토리당]]에서도 각료를 등용했다. 그의 총리 재임 시절 [[7년 전쟁]]의 강화 조약인 [[파리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1763년 4월에 퇴진했다.
 
== 생애 ==
50번째 줄:
뷰트 백작은 국왕 [[조지 2세]]의 외교를 ‘하노버 편중’이라고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미움 받고 있었다. 1747년에서 [[웨일스 공 프레더릭]]의 레스터 하우스의 식객이 되어 아마추어 연극이나 카드놀이로 인기를 얻었다.
 
1751년에 웨일스 공 프레더릭는 훙거했지만 왕세자비 [[아우구스타 폰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녀]]로부터도 신뢰를 받았으며, 프레더릭의 장남 영국의 왕세손 [[조지 3세|웨일즈웨일스 공 조지 윌리엄 프레더릭]]의 가정교사로 임명되었다.
 
== 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