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인 바이에른 여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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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바이에른 공녀 ===
[[파일:Hélène (à gauche) et sa soeur Sissi.jpg|200px|left왼쪽|섬네일|헬레네와 시시]]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바이에른 공주 루도비카]]의 차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에 주로 여름에는 [[슈타른베르크]]에 있는 [[포센호펜 성]]에서 자랐으며, 겨울에는 [[뮌헨]]에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외손녀였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수영]], [[승마]], [[체조]]를 즐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시는 딱히 잘하는 것이 없었지만 아버지 막스와 어머니 루도비카 모두 [[비텔스바흐 왕가]]에서 상당한 미남 미녀였기에, 그녀 또한 상당한 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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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자치 ===
[[파일:Ferenc József koronázása Budán.jpg|섬네일|260px|left왼쪽|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왕, 왕비 즉위식]]
시시는 자신을 환영해주었으며, 조피 대공비와 오스트리아 황실 사람들이 1848년 혁명으로 인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헝가리 왕국|헝가리]]가 자신과 비슷하다 하여 헝가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피 대공비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체코어|보헤미아어]]를 배우도록 했지만, 시시는 오히려 [[헝가리어]]를 배웠고, 자신의 모든 시녀들을 [[헝가리인]]으로 교체하였으며, 의상도 헝가리풍 의상을 입었다. 시시는 [[언드라시 줄러]] 백작과 함께 헝가리 자치를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헝가리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보오전쟁]]으로 인하여 [[빈]]이 점령당할 위기에 놓이자, 황실 보물들과 예술품들은 [[부다페스트]]로 옮겨졌고, [[황후]]와 아이들 역시 [[부다페스트]]로 피신하였다. 이를 기회로 [[헝가리 왕국|헝가리]]는 [[독립]]을 요구하는데, 시시는 황제와 [[언드라시 줄러]] 백작을 설득하여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을 이루어내, [[헝가리 왕국]]이 [[국방]], [[재무]], [[외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자치를 누리기로 합의하였고, [[1876년]] [[6월 8일]] [[헝가리의 군주|헝가리 사도왕]], [[헝가리의 군주 배우자|사도 왕비]]로의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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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아이 ===
[[파일:Hungary szeged elisabeth 2.jpg|섬네일|120px|left왼쪽|[[헝가리]] [[세게드]]에 있는 시시 동상]]
시시는 헝가리의 완벽한 자치를 위해서, 첫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는 [[오스트리아의 황제|오스트리아 황제]]로 만들고, 둘째 아들을 낳아 그를 [[헝가리의 군주|헝가리 왕]]을 만들고 싶었다. 시시는 임신임을 알아차라지마자, [[부다페스트]]로 갔는데, 이는 헝가리의 군주가 될려면 [[헝가리 왕국|헝가리 영토]]에서 태어나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시의 바램과 달리 딸 [[오스트리아 여대공 마리 발레리|마리 발레리]]가 태어났다. 마리 발레리는 시시의 애정을 듬뿍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언니 기젤라와 오빠 루돌프는 발레리를 질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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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암살된 왕족]]
[[분류: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
[[분류:비텔스바흐 가비텔스바흐가]]
[[분류:오스트리아의 황후]]
[[분류:헝가리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