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쿠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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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는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특권을 가진 소수의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소수가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겠지만, 그들은 '''전(前)노동자'''일 뿐이다. 그들이 대표자나 통치자가 되는 순간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게 되며, 국가 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서 노동자들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게 될 것이고, 단지 민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 자신의 욕구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알지 못하는 자이다.|Statism and Anarchy<ref>The differences between revolutionary dictatorship and statism are superficial.......[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il-bakunin-statism-and-anarchy Statism and Anarchy]</ref>}}
사회주의 철학에서 계급을 이야기할 때는, 사람이 생산에 관여하는 방식으로서 분석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부르주아, 즉 자본가이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노동력(혹은 서비스)을 제공해야 하는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가 그것이다. 여기서 계급은 어떠한 정체성이 아니라 생산에 관여하는 사회관계만을 이야기한다. 맑스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민중을 대표하는 엘리트 전위 혁명당이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전위대의 과거가 어떻든 간에 그들이 지배자로서 자리 매김한 순간, 그들이 생산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 이점에서 아나키스트들은 레닌주의적 관점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레닌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국가의 독재다. 모든 계급 관계는 물질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에 누군가 노동자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노동자이게 했던 물질적 조건에서 벗어난다면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노동자 통제)하는 것과, 프롤레타리아의 대리자(국가 관료)가 지배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수사학적으로 정당의 권력과 노동계급의 권력이 같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 부분에서 노동계급과 대리자들 간의 유리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쿠닌은 노동계급의 실질적 힘과 대리자의 권력은 결코 만나지 않을 평행선이며, 그 대표자들은 결국 새로운 계급을 형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어떤 변증법적인 힘에 의하여 대리자들의 권력이 노동자 계급의 힘으로서 반환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이 주장을 제대로 된 유물론적 분석이 아니라 일종의 관념론으로 간주한다. 맑스주의에선 이 [[국가 사회주의]](혹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단계가 공산주의(무계급 무국가)단계로의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이 국가 사회주의(경멸적 용어로는 [[국가 자본주의]])가 영구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류 맑스주의자들은 이런 입장들을 울트라 레프트(Ultra-left)라고 부르면서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바쿠닌과 맑스 사이의 분쟁은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 부분은 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 사이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으로 남아있다.<ref>[http://anarchism.pageabode.com/afaq/secHcon.html Anarchist FAQ, Section H - Why do anarchists oppose state socialism?]</ref>
대리자의 문제는 이런 갈등뿐만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들이 다른 사회 문제에 관여할 때도 중요하게 고려된다. 민주주의(민주주의는 결국 자기 통치가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는 자들을 뽑는 행위다.) 비판<ref>{{웹 인용 |url=https://crimethinc.com/2016/03/16/series-the-anarchist-critique-of-democracy/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8-01-0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101210448/https://crimethinc.com/2016/03/16/series-the-anarchist-critique-of-democracy/ |보존날짜=2018-01-01 |깨진링크=예 }}</ref>,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선민의식적 사회운동, 그리고 운동에서의 조직(조직 자체가 어느 정도 대리주의적이고, 유사 국가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Quotation|강력한 국가는 오직 한가지 방법을 통해서만 견고한 기반을 가질수 있는데, 군사와 관료적 중앙집권화가 그것이다. 군주제와 설사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도 그것들의 차이는 그저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관료들은 왕의 이름이라는 미명으로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자신의 금고를 채운다. 동시에 공화국에서 민중은 "민중의 의지"(그리고 민주적 관료들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라는 미명으로 같은 계급의 이익을 위해 같은 방식으로 수탈당하며 억압당한다. 공화국에서는 자신이 민중의 의지라고 주장하는 국가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진짜 민중을 계속해서 억압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 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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