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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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술은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1908년 1월 10일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농장 지배인 사이토(齊藤)의 집을 습격하여 일본인 3명을 살해하고, 소총·일본도 등 무기를 탈취하였다.<ref name="한국학"></ref> 1908년 12월 나주에서 밀정 황도현(黃道玄)의 재산을 탈취하고 그를 살해하였다.<ref name="한국학"></ref><ref name="캐스트"></ref> 1909년 1월 30일에는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지주 모리(森十內)의 집을 습격하여 2,500원 상당의 물품을 탈취하였다.<ref name="한국학"></ref>
 
1909년 8월 영산포 헌병대 요시무라 중위가 이끌던 ‘폭도토벌대’의 추격을 받다가 교전 끝에 결국 체포되었다.<ref name="캐스트"></ref> 오성술은 16세에 금성 나씨와 결혼하여 26세에 얻은 1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석 달 뒤에 일본군 헌병대에 붙들렸다붙들린 것이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7859
|제목 = 한말 의병장들은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