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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llang|ru|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1890년]] [[2월 10일]] ~ [[1960년]] [[5월 30일]])는 구 [[소련]]의 시인·소설가이다. [[모스크바]]에서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음악]]을 지망하였다가 [[철학]]에 몰두하여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 [[독일]] [[마르부르크]]에 유학하여 철학을 연구하였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미래파]]의 기관지 《레프》를 중심으로 많은 서정시를 발표하여, [[러시아]] 최후의 순수 예술파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8년]] [[스웨덴]]의 [[한림원]]에서는 그의 장편 소설 《[[의사 지바고]]》를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하여 구 소련 정부와 작가 동맹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어, 이를 거부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성루 위에서》, 《1950년》, 《안전 보증》 등이 있다.
 
==생애 초기==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ref>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biography/Pasternak.html</ref> 아버지는 예술 학교 교수이자 화가인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였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인 로자 코프만(Rosa Kaufman)였다. 파스테르나크는 국제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집에 들렀던 방문객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레프 톨스토이]]가 있다.
 
그의 이웃이었던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의 영향으로 파스테르나크는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모스크바 음악 학교]](Moscow Conservatory)에 입학했다. [[1910년]] 그는 돌연 학교를 떠나 [[마르부르크 대학]](University of Marburg)에서 [[신칸트주의]](Neo-Kantianism) 철학자인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과 [[니콜라이 하트만]](Nicolai Hartmann) 지도 아래 공부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철학을 직업으로 삼길 포기한 후, [[1914년]]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러시아 미래파]]인 [[알렉산더 블록]]의 영향을 받은 그의 첫 시집은 같은 해 말에 출판됐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가르쳤다. 이곳의 경험이 의사 지바고에 반영돼 있다. 그의 친척, 친구들 대다수와 달리, 그는 혁명 후에도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사상과 가능성에 이끌렸다.
 
{{토막글|문학}}
{{글로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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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러시아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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