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카간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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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루스 [[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현대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로 발전된다.<ref name="Franklin and Shepard 33–36." /><ref name="Dolukhanov 187" />
 
유럽에서 루스 카간국이 언급되는 것은 프랑크 왕국의 산베르탄 연대기이다. 이 연대기에서는 스스로를 루스라고 부르는 노르드인들이북게르만인들이 838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방문하였다고 연대기에는 쓰여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귀국할 때 스텝 지역 경유는 마자르인(헝가리)에 습격받을 것을 겁내서 콘스탄니노플의 테오피로스의 그리스 대신과 함께 독일 경유로 귀국했다. 귀국 도중에 잉겔하임이라는 도시에서 서로마 프랑크왕 루도비쿠스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 루스의 군장이 스스로 Chacanus(라틴어로 카간)이라고 답하였고 자신들은 스웨덴인 (''comperit eos gentis esse sueonum'')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871년 동로마의 바시레이오스와 서로마의 루도비쿠스 2세가 협력하여 아랍인들로부터 탈환한 도시 "바리"를 두고 다툴 때 동로마의 카이져는 서로마의 프랑크왕이 "카이저"라는 단어를 부당하게 사용한다고 비판하며 분노의 편지를 보냈는데 바시레이오스는 프랑크왕인 루도비쿠스 2세는 국왕(reges)라며 "카이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동로마 바시레이오스뿐이라고 적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