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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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기 특허로 큰 돈을 번 그는 [[1876년]]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로 알려진 [[멘로파크]]연구소를 세워 발명을 계속하였다.<ref name="김병도">《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에디슨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멘로파크 연구소/김병도 지음/21세기 북스</ref> 그의 발명은 굉장히 많아서 특허의 수효만도 1,300여 개나 된다. 에디슨의 발명품으로는 [[1874년]] 자동 발신기 개발, [[1877년]] [[축음기]], [[1879년]] 전화 송신기개발, [[1880년]] 신식 발전기와 전등 부속품개발, [[1881년]] [[전차]]의 실험을 했고, [[1882년]] [[발전소]] 를 건설했고, [[1888년]] [[영화]]의 제작방법을 알아냈고, [[1895년]] [[광물]]을 가려내는 방법, [[1900년]] [[시멘트]] 공업의 개량, [[1909년]] 엔진형 개발, [[축전지]]개발 등이 있다.
흔히 노력형 천재라고 알고있으나 의외로 상당히 틀린 부분이 많다. 이 중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문은 역시 도시의 밤을 환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구의 발명은 발전, 송배전 부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고 각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가게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이전구가 조선에들어오면서
경복궁 전체에 전기가발전했다 (향원정 에서 시작)
 
[[1929년]] 82세 때 백열 전구 발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고 난 뒤 병을 앓게 되었다. 에디슨은 그 이후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오렌지 (뉴저지주)|웨스트오렌지]] 자택에서 병상에 누워서 지내다가, [[1931년]] [[10월 18일]]에 총 1,033개의 발명품을 남기고 향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