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의 디미트리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태그: m 모바일 웹
29번째 줄:
이후 1945년부터 1950년까지 그는 테헤란에 있는 성모 희보 그리스 정교회 공동체의 담당 사제로 사목했으며, 페르시아 왕의 허락을 받고 테헤란 대학교에서 1년 간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테헤란에서 교수직 임기를 마친 후, 그는 1950년 페리키오이로 돌아와 1964년까지 정교회 공동체를 사목했다.
 
1964년 6월 23일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시노드에 의해 엘레이아의 명의 주교로 선출되어 8월 9일 주교 서품을 받았다. 1972년 2월 15일 그는 임브로스와 테네도스의 수도 대주교로 선출됐다. 그러나 수도 대주교 선출 직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아테나고라스 1세|아테나고라스 1세]] 세계 총대주교가 안식하면서 7월 16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시노드에서 후임자로 선출됐다. 그는 1972년 7월 18일 이스탄불 성 요르고스 성당에서 총대주교좌에 착좌했다.
 
디미트리오스는 범정교회 시노드 소집을 준비하기 위해 스위스 참베시에 있는 세계 총대주교청 정교회 센터에서 범정교회 모임의 첫 번째 모임을 소집했다. 1979년 11월 30일 디미트리오스 1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더불어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의 공식적인 신학적 대화 설립을 수립하였다. 또한 그는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와도 만남을 가졌다.
38번째 줄:
 
{{전임후임
|직책=[[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임기=1972년 ~ 1991년
|전임자=[[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아테나고라스 1세|아테나고라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