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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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교체되다 ===
새로운 지휘관, 조괄의 부친은 명장 조사(趙奢)였다. 그는 생전에 진의 군사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력이 있었던 장수였다. 그는 병사들을 아꼈고, 욕심이 없어서 전투에서 이긴 후 왕에게 하사받은 은상은 병사들에게 모조리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런 조사는 정작 자기 아들을 천거하기는 꺼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성품 때문이었다. 조괄은 병법에 통달한 수재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외우기만 한 병법을 실전에 응용하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거들먹거리고 뽐내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그래서 조나라의 조정에서 조괄을 지휘관으로 삼으려 하자 재상 인상여(藺相如)가 반대했으며, 심지어 조괄의 어머니는 조정에 아들을 천거하면 안 된다는 건의까지 올렸으나, 이는 무시되고 말았다무시되었다.
 
반면,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진군의 새로운 지휘관인지휘관이 된 백기는 백전노장이었다. 당시 수많은 강대국들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백여 개가 넘는 성을 빼앗을 정도의 공적을 거둔 장수였다. 이러한 지휘관에게 조괄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 전투 과정 ===
백기는 우선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일부러 몇 차례 전투에서 패전하고 후퇴하여 조괄이 방심하고 추적하게 만들었다. 조괄은 후퇴하는 진나라 군대를 쫓아 계속해서 전진하였고, 마침내 매복한 진나라 군대가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매복한 군대가 합세하여 조괄 군대를 포위하자, 조괄은 포위망을 뚫으려 했지만 결국 화살에 맞고 사망하였다. 지휘관을 잃어버린 조나라 40만 군사는 진나라 군대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