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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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출신이다. [[이탈리아]] 이민의 후손으로, 부친 [[토머스 달레산드로]]는 그가 태어났을 당시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부친은 [[1947년]] ~ [[1959년]]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고, 메릴랜드 주 대표 [[미국 상원|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에 따라 낸시는 아버지의 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러나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하고 폴 펠로시와 결혼한 후로는 한동안 자녀들을 낳고 주부로 지냈다.
 
낸시 펠로시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따라 [[뉴욕]]에서 거주하다가 남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다섯 자녀를 낳고 민주당에 가입하여 샌프란시스코 지역사회 활동을 했으나, 적극적인 정치활동은 하지 않고 차분히 지역에서 인맥을 쌓았다. [[1987년]]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여성인 [[샐라 버튼]]이 사망하자 보궐 선거에 출마하여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당선되었다. 이후 펠로시는 2년 주기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70 ~ 80%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계속 당선되었다.
 
하원 진출 후 경력을 쌓은 펠로시는 [[2001년]]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로 선출되어, 하원에서 민주당 내 서열 2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양대 정당의 원내 총무가 되었다. [[2003년]] 하원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어 하원에서 민주당 최고 자리에 올랐으며, [[공화당 (미국)|공화당]] 정권과 대립하였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의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정책을 비판하고 [[가톨릭]] 신자면서도 [[동성 결혼]]이나 [[낙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이라크 전쟁이 큰 이슈였던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31석을 추가하며 총 233석을 확보, 202석을 확보한 공화당을 압도하였다. 이에 따라 하원 민주당 대표인 그는 [[2007년]] 시작되는 제110대 회기부터 미국 연방 하원의장에 취임하였다. 연방 하원의장은 [[미국의 대통령|대통령]]과 [[미국의 부통령|부통령]] 다음가는 권력 서열 3위로, 그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