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촌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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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촌인들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다. 다른 종족의 문헌 중 오로촌인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늦게 나타날 뿐 아니라 아주 적기 때문에 오로촌족의 원류에 대해서는 현재 통일된 학설이 없다.<ref name="Uya">{{서적 인용|author1=한여우평|author2=우야즈|author3=관샤오윈|authorlink=|title=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series=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36810979|page=30}}</ref>
 
문헌 기록을 보면 《[[몽고비사]]》에서는 외흥안령에 거주하는 종족을 ‘숲속의 백성'(林中百姓)이라고 하였다. 《[[대명일통지]]》에서는 "북산(北山)에 야인(野人)이 있는데 사슴을 타고 다닌다"라고 하였는데 대략 오로촌인과 어웡키 등 순록을 이용하는 종족을 지칭한다.청대 《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에는 "오로촌은 실제로 소론(索倫, {{llang|mnc|{{만몽 유니코드|lang=mnc|ᠰᠣᠯᠣᠨ}}|Solon}})의 한 부족으로 그 종족은 모두 흥안령 산중에 흩어져 있으며 수렵을 위주로 하는데 원대은 숲속의 백성이라 칭했으며 청초에는 수중인(樹中人) 또는 사록부(使鹿部)라고 불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청 제국]] 사료에는 오로촌, 어웡키, 다우르를 소론부(索倫部)<ref>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색륜(索倫)은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에벤키|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ref>, 사록부(使鹿部), 타생부(打牲部)로 통칭한 기록이 있다.<ref>{{서적 인용|author1=한여우평|author2=우야즈|author3=관샤오윈|authorlink=|title=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series=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36810979|page=33}}</ref>
 
중국 경내의 오로촌인들은 [[만주국]] 시대인 1930년대 후반에 관동군 특무 기관에서 공작하고 군사 훈련을 했다. 관동군은 그들에게 대소 정보 수집 임무를 맡겼다. 오로촌족은 소련 영내에도 동족이 있었으며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능통했기 때문에 이런 임무에 적합했다. 당시 관동군 특무 기관은 소수 민족 선무 공작에 아편을 택했다고도 하는데, 오로촌족 사이에 마약 중독이 확산되면서 전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ref>中生勝美「オロチョン族をアヘン漬けにした日本軍」, 『世界』第674号, 2000年5月.</ref>
 
== 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