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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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삼국유사]]》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내물 마립간]]의 다른 아들인 [[복호 갈문왕]]의 증손자가 되는 남편 [[법흥왕]]과는 혼인했다. 아들이 없고 딸 [[지소부인]]만 있어 지소공주는 삼촌이 되는 [[입종 갈문왕]](다른 이름은 [[사부지 갈문왕]]<ref>울진 봉평신라비 및 울산 천전리 각석에는 사부지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ref>)에게 시집갔다. 지소공주는 후일 [[진흥왕]] 삼맥종과 숙흘종 형제의 어머니가 된다.《[[삼국사기]]》는 그녀를 박씨(朴)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어 《[[삼국사기]]》는 그녀를 박씨(朴)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삼국유사]]》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 김씨의 딸이라고 하였으므로 김씨(金)가 된다. 옥진의 어머니인 [[오도부인]](묘심의 딸)과는 이부 자매이고, 흥도의 남편 [[기오공]](홍기공의 아들)이나 문노의 아버지 [[비조부]](호조의 아들)와는 이부 남매이다. [[540년]] 남편 [[법흥왕]]이 붕어하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즉위하자 [[541년]]까지 1년간 섭정을 맡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법흥왕과 함께 법류(法流) 혹은 묘법(妙法)이라는 법호로 영흥사(永興寺)라고 하는 절을 짓고 그곳으로 출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이러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부군 [[법흥왕]]이 퇴위했을 때 [[섭정]]직을 맡지 않고 딸인 [[지소태후]]가 대신 섭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어 《[[삼국사기]]》는 그녀를 박씨(朴)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삼국유사]]》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소지마립간]]과 [[선혜부인]] 김씨의 딸이라고 하였으므로 김씨(金)가 된다. 옥진의 어머니인 [[오도부인]](묘심의 딸)과는 이부 자매이고, 흥도의 남편 [[기오공]](홍기공의 아들)이나 문노의 아버지 [[비조부]](호조의 아들)와는 이부 남매이다. [[540년]] 남편 [[법흥왕]]이 붕어하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즉위하자 [[541년]]까지 1년간 섭정을 맡기도 하였다.)
 
== 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