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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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고=[[1999년]] [[4월 9일]] 지정
}}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일기이다.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개요 ==
[[1623년]]( [[조선 인조|인조]] 1년) 3월부터 [[1894년]]( [[대한제국 고종|고종]] 31년) [[6월]]까지까지의 행정과 사무, 왕명, 출납 등을 기록한 썼다일기이다. 단일 사료로서는 가장 방대한 양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모두 3,245책, 글자수 2억 4천250만자이다. [[1960년]]~[[1977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초서체]]였던 승정원일기를 [[해서체]]로 고쳐쓰는 작업을 하였다. 현재는 [[2010년]]까지 모든 승정원일기 내용의 전산화가 추진중이다.
 
== 소실 ==
승정원일기는 [[1592년]]( [[조선 선조|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1623년]]( [[조선 인조|인조]] 1년)까지의1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으로 인해 거의 사라졌다. 그 후 임진왜란 이후의 일기를 개수했으나, 또 [[1744년]] ([[조선 영조|영조]] 20년) 승정원의 화재로 인해 임진왜란 직후 ~ [[1721년]]( [[조선 경종|경종]] 1년)의1년의 기록이 소실되어 [[1746년]] (영조 22년)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해 개수했으나 본래 책수의 3분의 1도 안되는 양만 개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1888년]]( [[조선 고종|고종]] 25년)에25년에 또다시 화재로 [[1851년]] ([[조선 철종|철종]] 2년)에서2년에서 [[1888년]] (고종 25년)까지의25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개수했다. 그 밖에 수많은 분실과 화재를 당하고 개수하기를 반복하였다.
 
== 함께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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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db=1&v_doc_no=00000400 승정원일기 설명] - 문화재청
 
== 주석 ==
{{주석}}
{{대한민국문화재}}
{{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과 세계무형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