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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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날 = {{출생일|1833|10|21}}
|태어난 곳 = [[스웨덴]] [[스톡홀름]]
|죽은 날 = 1896년{{사망일과 12월 10일 (61세)나이|1896|12|10|1833|10|21}}
|죽은 곳 = [[이탈리아 왕국]] [[산레모]]
|거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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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시절과 유학 ===
[[스톡홀름]]에서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재주있는 건축기술자로 알려져있다. 발명하기에만 열중하는 아버지라 가정의 살림은 나날이 빈궁에 빠져 들어갔다. [[1837년]] 노벨의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였다. 거기서 기계공장을 세우고 처음에는 번창하였다. 16세18세([[1851년]])에 [[미국]]에 유학하여 4년간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하였다. [[크림 전쟁|크리미아 전쟁]](1853~56년)에 러시아가 패전하는 바람에 노벨의 아버지 공장도 파산하고야 말았다.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돌아가고 노벨은 형님 두 분과 함께 그냥 [[러시아]]에 머물러서 연구를 하였다. 이때부터 [[다이너마이트]]의 연구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후에 다시 노벨은 스톡홀름에 돌아왔다. 이때 노벨은 혼자서 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좋은 공동연구자였다. 스톡홀름의 공장이 폭발할 때는 노벨의 동생 에밀이 희생한 일까지 있었다.
 
=== 니트로글리세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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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남아 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노벨이 열아홉살 때 외국 유학 도중 프랑스에서 한 여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 후 이 소녀는 죽고 말았다. 이 죽음의 상처로 노벨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의 별장에서 여생을 마쳤다. 향년 61세. <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62600329104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60-06-26&officeId=00032&pageNo=4&printNo=4387&publishType=00010 | 제목 = 정신의 거인(4) |저자= [[김요섭]] | 날짜 = 1960-06-26 | 출판사 = 경향신문 }}</ref>
 
=== 노벨박물관, 노벨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