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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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한국사]]를 연구했다. 1980년대 붕당정치론을 제창하여 "당파성론"을 교과서에서 퇴출시켰으며, 1990년대에는 규장각을 독립시켜 조선후기를 르네상스로 평가하는 새로운 연구의 장을 열었으며, 정조를 절대계몽군주로 최초로 평가하여 정조의 개혁군주로서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2000년대에는 대한제국 연구에 집중하여 일제의 강제병합 불법성을 증명하였으며, 고종의 근대화 노력을 밝혀냈다.이태진은 특정 시대를 전공한다기보다는 한국사 전체에 포괄적으로 관심이 넓은 편으로, 학술대회에 참여하거나 논문을 내는 것 역시 시대를 가리지 않고 내는 편이다. 하지만, 의욕은 앞서지만 자신의 주장이나 추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특히 2000년에 낸 책 <고종시대의 재조명>부터 고종에 대한 재평가를 꾸준히 진행 중인데 고종에 대해 지나치게 옹호 일변도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외규장각 도서반환운동을 대한민국 내에서 일으켜서 의궤 환수에 공헌하였다. 최근에는 안중근 연구를 새로이 소개하여 대한제국과 연계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일련의 식민사학 타파의 공헌으로 3.1문화상을 받았으며, 프랑스 의궤 반환 운동의 공으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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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정년 후 뉴라이트 계열과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에 대해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사의 주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말살하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양자의 극단적인 역사인식을 함께 비판하고 구시대의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갈 것을 주문하였다.
 
2000년대에는 대한제국 연구에 집중하여 일제의 강제병합 불법성을 증명하였으며, 고종의 근대화 노력을 밝혀냈다.이태진은 특정 시대를 전공한다기보다는 한국사 전체에 포괄적으로 관심이 넓은 편으로, 학술대회에 참여하거나 논문을 내는 것 역시 시대를 가리지 않고 내는 편이다. 하지만, 의욕은 앞서지만 자신의 주장이나 추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특히 2000년에 낸 책 <고종시대의 재조명>부터 고종에 대한 재평가를 꾸준히 진행 중인데 고종에 대해 지나치게 옹호 일변도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을미사변 건으로 인조이재팬에서, 대학도서관에 비치될정도로 이미 공개된 자료인 '우치다 보고서'에 대해 자신이 최초 발견했다고 주장하였으며."사실은 일본이 명성황후를 은밀하게 살해한건데 그 보고서를 은밀하게 숨겼었다"라고 해 논란을 빚었다.
 
==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