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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년([[조선 중종|중종]] 1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한 후 검열·부수찬 등을 지내다가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 후 곤양 군수를 거쳐 풍기 군수로 있을 때, 1542년 백운동에 [[고려]] 말의 학자 [[안향]]의 사당을 세웠다. 이듬해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그 후 직제학·도승지·대사성·호조 참판을 역임하고, 1551년 황해 감사로 있을 때 해주에 수양 서원(문헌 서원)을 창설하였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죽은 후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으며,〈도동곡(道東曲)〉 ·〈육현가(六賢歌)〉 ·〈엄연곡(儼然曲)〉 ·〈태평곡(太平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의 단가 8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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