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차왜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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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차왜성으로 문서 이동을 해야할 필요가 있네요;;; 네이버 카카오맵등 눌차왜성 카카오맵도 가덕 눌차왜성 으로 눌차왜성으로 이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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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왜성눌차왜성'''(加德島訥次倭城), 약칭가칭 '''눌차왜성가덕도왜성'''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부산광역시)|강서구]] 눌차동에[[가덕도동|눌차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倭軍)이 쌓은 [[일본]]식 [[성 (건축)|성곽]]([[왜성 (건축)|왜성]])이다. [[임진왜란]]때 [[모리 데루모토]],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축성을 담당하였으며, [[모리 히데카네|고바야가와 히데카네]], [[다치바나 무네시게]]등이 주둔하였다.
 
눌차왜성은 가덕도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으며 가덕왜성 또는 눌차왜성이라고 부른다. 결합해서 '가덕 눌차왜성' 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가덕도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하더니 요즘은 '''눌차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하고 있다.
 
== 역사 ==
"가덕도왜성은 본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이 능선을 따라 연접되어 있는 연곽식(連郭式)이다. 70m의 산 정상부를 삭평하여 석축으로 본환(本丸)<ref>왜성 내에서 중심이 되는 공간</ref>를 구축하였는데, 석축의 둘레는 86m이며 중심부에는 높이 2~3m의 석축이 잔존한다. 남쪽의 할미당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축조되었고, 할미당이 있는 부분이 본환의 입구로 추정되며, 본환의 서쪽 벽은 성벽에 굴곡을 주어 치성(雉城)<ref>성벽을 돌출시켜 성벽에 붙은 적을 측면에서 제어하는 시설</ref>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환의 남쪽으로는 가늘고 긴 지형이 계속되면서, 남쪽으로 갈수록 3~4단을 이루며 단의 동쪽과 남쪽 사면에는 1m 내외의 석축이 확인된다. 대지상으로 돌출되어 요곡륜(腰曲輪)<ref>주 공간의 측면을 따라 길게 조성된 구역</ref>을 이루고, 북쪽으로 연속된 66.5m의 산정부도 독립된 부곽으로 연결하여 축조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수굴로 추정되는 골짜기가 있다. 또한 강서구 눌차동 항월 마을에서 서쪽으로 50m의 산정부도 왜성의 일부로 추정되나, 석축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1593년]] 4월 22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리 데루모토]]에게 조선 수군의 함선을 대항하기 위하여 주요 항구에 성곽을 축성할 것을 명령했는데, 가덕도에 축성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시기는 바로 이 무렵부터로 생각되며, 축성을 담당한 자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다치바나 무네시게]] 등이었다.<ref>參謀本部編(1995). 《日本戰史 朝鮮の役(本編)》.德間書店</ref> 사실상 당시는 본격적인 성곽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인 요지에 간단한 임시성이 구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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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2002}}
</ref>
 
== 위치 ==
눌차왜성이 있는 [[가덕도]]는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져 있으며 가덕수로를 지나면 [[김해시|김해]]와 [[부산광역시|부산]]으로 연결하여 갈 수 있다. 특히 [[일본군]]들의 수군은 [[창원 진해 안골왜성|안골왜성]]과 [[창원 진해 웅천왜성|웅천왜성]]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눌차왜성은 왜군 수군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가덕도를 지나면 바로 부산의 [[다대포]]로 연결이 되고 13~14km 가는 동안 일본군들이 방어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곳이였다. 조선수군은 현재 가덕도등대가 있는 외양포와 새바지를 돌아서 부산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큰 모험이라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그리고 눌차왜성이 있는 가덕수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 곳이며 그 곳에 일본군들은 눌차왜성을 축성하였다. 즉 반드시 조선수군이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눌차왜성을 축성하였으며 눌차왜성에서 보면 가덕수로를 따라서 지나가는 조선수군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일본군들도 조선군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에 왜성을 축성함으로 길목을 차단하고 수군들의 진출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눌차왜성에서 직선거리로 5km안에 안골왜성과 [[가덕진성]], [[천성진성]]이 있으며, 10km 안에는 웅천에 있는 [[창원 진해 웅천읍성|웅천읍성]], [[창원 진해 웅천왜성|웅천왜성]], [[창원 진해 제포진성|제포진성]], [[진해 자마산성|자마왜성]]이 있습니다. 반경이 15km를 넘어서면 [[김해 죽도왜성]]과 [[영등포왜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웅천에는 [[진해 명동왜성|명동왜성]]이 있다. 20km를 넓히면 거제 [[송진포왜성]], [[거제 장문포 왜성|장문포왜성]]이 있다. 즉 조선수군이 장목진에서 눌차왜성까지 가려면 직선거리로 20km정도 되며 눌차왜성에서 [[부산일본성|부산왜성]]까지 또한 20~25km까지로 거제에서 부산까지 중간지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김해까지도 20km로 일본군 수군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볼 수 있다.
 
== 눌차도 ==
가덕도를 보면 가덕도와 눌차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눌차도에는 눌차왜성이 있으며 가덕도에는 눌차왜성의 지성이 자리하고 있다. 가덕도왜성의 천수대에서 보면 가덕수도를 지나가는 선박들을 모두 확인이 가능하며 가덕만에 있는 선박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가덕도왜성의 선소의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현재 외놀마을이 있는 곳이 선소가 있었던 곳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향월마을이 있는 곳은 가덕만이 있는 곳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고 조선수군이 가덕수로를 진출시 눈에 잘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외놀마을이 있는 곳은 왜군들의 선박을 숨기기 좋은 곳이고 선소에서 내려 눌차왜성까지 올라가기도 좋다는 의미가 있다.
 
== 할미당 ==
눌차왜성의 본환에 건설된 할미당이 있는 곳으로 나무와 계단이 놓여져 있다.
할미당 옆은 담장처럼 만들어 놓은 왜성에서 사용된 성돌이 담장을 이루고 있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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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부산광역시의 성]]
[[분류:왜성]]
[[분류:부산 강서구의 건축물|눌차왜성]]
[[분류:부산 강서구의 문화재|눌차왜성]]
[[분류:임진왜란]]
[[분류:대한민국의 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