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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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키가하라 서쪽의 마쓰오 산-사사오 산 라인의 중요한 곳인 마쓰오 산 성채에는 거취가 불분명한 고바야카와 군이 서군의 조반(城番)<ref>비상 사태에 대비해 성을 수비하는 병사</ref> 을 절반이나 몰아낸 형태로 주둔한 일, 또 오가키 성이 수공에 취약하기 때문에 수공을 당한다면 이미 성이 공격당하여 4번에서와 같이 오타니, 모리 군이 배후를 칠 수 없어, 이 전략은 깨지고 만다. 그 때문에 미쓰나리는 세키가하라에 잠행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는 것이 이 설의 요지이다.
 
서군은 대장을 잘못 선택해서 패했다. [[시마즈 요시히로]]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총지휘를 했더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대패를 당하진 않았을 것이며 적어도 동군과 백중지세를 유지했을 것이다. 서군은 순전히 [[이시다 미츠나리]] 혼자만의 잘못으로 패배한 것일 뿐이며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 전투에서 저지른 실책들은 다음과 같다.
* [[시마즈 요시히로]]를 귀빈으로 대우해줬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끌고 온 병력이 1,500명밖에 안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마즈 요시히로를 푸대접했다.
*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가장 이시다 미츠나리를 심하게 의심하는 다이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에게 만큼은 죽을 힘을 다해 비위를 맞춰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마음에 쏙들었어야 했는데 정작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런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에게는 종이로 된 서약서 한 장만 달랑 써 주고 아무것도 안 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전투에서 엄청난 첩보전을 감행했다. 이에 따라 이시다 미츠나리 역시 도쿠가와 상대로 맞첩보전을 벌였어야 했지만 이시다 미츠나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방관했다.
* 이시다 미츠나리가 평소에 행동을 똑바로 하지 못했다. 특히 [[호소가와 가라샤]]를 죽게 한 일로 세간의 분노를 크게 산 상태였으며 이 때문에 이 전투에서 본인이 직접 지휘를 하지 못한 채 [[모리 데루모토]]의 이름을 팔아서 지휘를 해야만 했다.
* 모리 데루모토의 이름은 팔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모리 데루모토를 전쟁터에 나오게 하지 못했다. 서군 병력들은 모리 데루모토의 얼굴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만으로도 군 내부의 사기를 크게 좌우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 데루모토는 서군들 앞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군 [[아시가루]] 들의 관범에서 보면 '''[[이시다 미츠나리|웬 비리비리하고 왜소한 놈]]이 자칭 모리 데루모토에게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하면서 나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