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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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 하던 중, 집에 갔다가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7월 2일]] 슈토테르하임 인근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루터는 땅으로 엎어지면서 광부들의 [[성인 (종교)|수호성인]]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성 안나(성모의 어머니)여, 나를 도우소서! 저는 [[사제|신부]]가 되겠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려는 생각이 이미 무르익었던 터라 루터는 뇌우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ref>{{서적 인용 |저자= 조인형 |제목= 역사와 오늘|날짜= 1999-03-15 |출판사= 신서원 |id= {{ISBN|978-89-7940-910-9}}}}<br />{{서적 인용 |편집자= 김인봉 |제목=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날짜= 2009-01-05 |판= 초판 |출판사= 한국교육방송공사 |쪽= 2권12 |id= {{ISBN|978-89-547-1115-9}}}}에서 재인용.</ref> 루터는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아들의 진로변경에 좌절을 느낀 부친의 분노어린 반대에도, [[1505년]] [[7월 17일]]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검은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사신부가 되었다.
 
루터는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뇌했는데, 수도회에서는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요한 폰 스타우피츠]] 교수는 루터가 [[성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면 평안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루터를 [[성서학]] 교수 사제로 임명했는데, 이로 인해 루터는 신앙적인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루터는 로마서, 시편, 갈라디아서 강의를 통해 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확립하게 되었다. [[칭의]]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교리다. 하나님의 의란 수동적인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주어지는 의이며, 대표적으로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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