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야스 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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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4-4-28}}
'''고레야스 친왕'''({{llang|ja|惟康親王|코레야스 신노}})은, [[일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제7대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으로 6대 쇼군 [[무네타카 친왕]](宗尊親王)의 적자이다.
 
== 생애 ==
[[사가미 국]](相模国) [[가마쿠라]](鎌倉)에서 태어나 [[분에이]](文永) 3년([[1266년]]) 7월에 아버지 무네타카 친왕이 쇼군직에서 폐해져 [[교토]](京都)로 송환되고, 세 살의 나이로 세이이타이쇼군에 취임했다. 처음에는 친왕선하(親王宣下)도 받지 못한 채 '''고레야스 왕'''('''惟康王''')으로 불렸고, 세이이타이쇼군에 취임한 뒤에는 [[신적강하]](臣籍降下)로 [[미나모토 씨|미나모토]](源)라는 [[가바네]](姓)를 받고 '''미나모토노 고레야스'''('''源惟康''')라 불렸다(고사가 겐지後嵯峨源氏).
 
26세가 되던 [[쇼오]](正応) 2년([[1289년]]) 9월에 [[호조 씨]](北条氏)는 성인이 된 고레야스가 쇼군으로 장기재임하는 것을 꺼려, [[고후카쿠사 천황|고후카쿠사 상황]](後深草上皇)의 황자였던 [[히사아키 친왕]](久明親王)의 취임을 꾀하고 그를 쇼군직에서 해임해 교토로 보냈다. 추방의 사전준비로 [[막부]](幕府)의 요청에 따라 황적(皇籍)을 도로 되찾고 조정으로부터 친왕 선하를 받아 '''고레야스 친왕'''이라 불리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의 고후카쿠사인 니조(後深草院二条)가 지은 『도하즈가타리(とはずがたり)』에 따르면 가마쿠라에서 추방될 당시 친왕이 채 수레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쇼군의 고쇼(御所)는 이미 신분이 낮은 무사(武士)들이 흙 묻은 발로 이리저리 짓밟고 다녔고, 섬기던 뇨보(女房)들은 눈물을 흘리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늘의 날씨조차 좋지 않은 가운데 멍석으로 싸인 허술한 수레에 친왕은 거꾸로 몸이 실린 채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고후카쿠사인 니조는 친왕이 아버지처럼 노래조차 남기지 못했다며 탄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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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고추(康忠)
** 딸: 히사아키 친왕의 아내(?-1306)로 [[모리쿠니 친왕]](守邦親王)의 어머니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의 모계 후손에 해당한다.
* 미나모토노 요시토모 ― 호몬히메(坊門姫, 배우자: 이치조 요시야스一条能保) ― 젠시(全子, 배우자: 사이온지 기미쓰네西園寺公経) - 도모코(倫子, 배우자: 구조 미치이에) - 닌시(仁子, 배우자: 고노에 가네쓰네)― 사이시(무네타카 친왕의 배우자) ― 고레야스 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