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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이로써 민주 진영의 양대 주자였던 [[김영삼]], [[김대중]] 2인의 통합은 끝내 이뤄지지 않게 되었다.
 
신생 민주자유당은 218석을 보유한 절대다수 정당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했으나, 2년 후 [[대한민국 제14대 총선|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개헌선은 커녕 299석 중 149석으로 과반 달성에도 실패하는 참패를 당한다. 이는 계파 간 공천 갈등의 여파로 낙천자 중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혹은 [[통일국민당 (대한민국)|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를 강행한 결과로 분석되었다. 이질적인 여러 계파가 한 당에 섞인 것에 대한 부작용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1992년 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이후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을 대거 영입하여 다시 국회과반수의 거대 여당이 되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당을 혁신한다는 명분 하에 민정계와 공화계를 탄압·축출했으며, 김영삼에 의해 쫓겨난 김종필 등이 1995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는 등 민주자유당은 점점 김영삼당으로 변형되었다.
 
이후 민주자유당의 총재를 겸하게 된 [[김영삼]] 대통령은 당을 혁신한다는 명분 하에, 민정계와 공화계를 탄압·축출했으며,축출했다. 김영삼에[[김영삼]]에 의해 쫓겨난 김종필 등이 1995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는 등 민주자유당은 점점 김영삼당으로 변형되었다.
 
== 비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