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2월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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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여성의 날]]이었던 [[1917년]] [[2월 23일]]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식량 배급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수만 명 규모까지 확대되었지만, 처음에는 온건하게 진행되었으며, 수도의 치안을 담당한 하바로프 장군도 경찰과 기병대의 투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도시 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었다.
 
총리의총리인 니콜라이 골리친은 사태 수습을 포기하고 전선의 니콜라이 2세에게 사임을 제안했지만, 황제는 이를 거부했고 하바로프에게 시위를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26일 시내 중심의 넵스키 대로의 시위대에 경찰 부대가 발포하여 다수의 시민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해 파블로프스키 연대 소속의 일부가 병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시내에 주둔한 다른 연대에서도 반란병의 진압과 노동자 측의 참여에 혼란스러워 했다.
 
두마 의장 [[미하일 로쟌코]]는 대본영에 있는 니콜라이 황제에게 수도가 무질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신속하게 알리고, 새로운 내각을 조직하여 민중의 불만을 가라앉힐 것을 요청했다. 이 연락을 받은 니콜라이 2세는 이바노프 장군에 몇 개 연대를 수도로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