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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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지역에서 발굴하고 있는 유물에 따르면 원주에는 {{출처|수백만 년 전|날짜=2019-05-23}}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며, [[삼한시대]]에는 부족연맹국가의 하나인 [[마한]]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했다.
 
[[백제]] [[근초고왕]] 때 [[마한]]을 [[백제]]가 완전 복속함으로써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강원도 지역에서 유일무이한 [[백제]]의 영역이었으나<ref>[[횡성]]은 [[마한]]이었으나 [[고구려]]로 편입되었고, [[영월]]은 [[진한]]이었으나 백제로 편입되었다. 즉 이를 근거로 두 지역은 [[백제]]라 보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통설이다. 그러나 [[원주]]의 경우 [[마한]]의 영역에서 그 계통을 이어받아 [[백제]]로 가장 먼저 편입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강원도에서 유일무이한 [[백제]]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23부제를 실시했던 1895년에도 충주부에 속하였으니 백제 땅이 아닐 수가 없다.</ref>, [[고구려]] 20대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어 [[469년]]에 평원군(平原郡)이 설치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나제동맹]]으로 [[신라]]가 [[한강]]유역을 확보함으로써 [[신라]]가 영토에 편입하는 등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격전장이었다.
[[678년]] ([[문무왕]] 18년)에 지방행정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완비함에 따라 북원소경(北原小京)이라 부르고, [[757년]]([[경덕왕]] 16년)에 북원경(北原京)으로 명칭을 바꿔 불렀다.
[[9세기]] 말에 [[신라]]가 쇠퇴하면서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신라 말기의 호족의 한 세력이던 [[양길]](梁吉)은 원주지역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하여 오늘날의 강원도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