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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인신공희’가 다른 지역에서 사라진 뒤에도 유독 [[테오티우타칸]]<ref name="테오티우아칸"/> 을 중심으로 한 중남미 지역에서는 오래 유지됐다는 부분이다. 테오티우타칸<ref name="테오티우아칸"/> 이 7세기 홀연히 자취를 감춘 뒤에도 무려 [[16세기]], 에스파냐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까지 이 의식이 유지됐다는 기록이다.<ref name="인신공희"/><ref>{{뉴스 인용|url=http://news.heraldcorp.com/view1.php?ud=20130131000739&md=20130203004057_AT|제목=멕시코서 해골 150구 발견…“인간제물 흔적”|저자=고승희 기자|날짜=2013-01-31|출판사=헤럴드경제|확인날짜=2013-07-15}}{{깨진 링크|url=http://news.heraldcorp.com/view1.php?ud=20130131000739&md=20130203004057_AT }}</ref>
 
=== 신라의 인신공양 ===
2000년 여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의 발굴에서 우물 바닥 가까운 곳에서 유골이 발견된다.<ref name="조선일보통일신라">{{웹 인용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02/2011060202655.html|제목=우물에 던져진 아이… 9세기 신라엔 무슨 일이?|날짜=2011-06-03|출판사=조선일보}}</ref> 학자들은 이 8~9세 어린아이 유골을 9세기 통일신라 제의(祭儀)의 희생물로 추정하였다.<ref name="조선일보통일신라"/> 경주 월성 [[해자]]에서도 여러 인골들이 나왔다.<ref name="한겨례성벽신라유골">{{웹 인용 |url=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94890.html|제목=경주 월성성벽 속에서 ‘인신공양’ 신라인골이 나왔다|날짜=2017-05-16|출판사=한겨레신문}}</ref> 2015년부터 발굴 중이던 경주 궁터인 월성 성곽의 성벽 토층부에서 건장한 성인의 유골이 발견되는데 의도적으로 주검을 넣은 정황이 뚜렷하다.<ref name="한겨례성벽신라유골"/>
 
=== 백제의 인신공양 ===
삼국시대 330년에 축조된<ref>{{웹 인용 |url=https://news.joins.com/article/10392376|제목=김제 벽골제 미스터리…삼국시대 저수지 맞나|날짜=2013-01-11|출판사=중앙일보}}</ref> 전라북도 김제 [[벽골제]]에서 조사 때에 여러 인골들이 나와서 땅기운을 다스리는 풍습을 보여주었다.<ref name="한겨례성벽신라유골"/>
 
=== 가야의 인신공양 ===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의 10대 순장소녀,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무더기 순장 흔적 등이 있다.<ref name="한겨례성벽신라유골"/>
 
== 목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