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97번째 줄:
신채호는 논설, 시, 소설 등에서 역사가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주장했고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 3대 영웅전을 썼고, 무력의 중요성을 주장했고, 영웅이 나와서 이 나라를 구하는 데에 적극적인 도움을 한다고 주장했다.<ref>"나의 권리가 떨어지기 전에는 칼과 피로써 그 권리를 보호할 따름이오. 나의 권리가 이미 떨어졌거든 칼과 피로써 그 권리를 찾아 올 따름이오..."-《을지문덕전》</ref>
 
또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일천년래제일대사건’(朝鮮歷史上年來第一大事件)이라고 주장했다. [[김부식]]의 사대적이고 중국 의존적 사관으로 인해 조선역사상에서 만주벌판이 역사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보았으며, 묘청을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을 가진 정치가이자 승려로 생각했다. 또한 묘청의 난을 진압한 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를 사대주의로 점철된 역사서로 강렬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 독립운동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