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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간회_창립.jpg|썸네일|230px|left|[[1927년]] [[2월 14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신간회 창립 모습.<ref>[[신간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합법적인 단체로 좌-우 연합 독립운동 단체였다. 이 단체는 [[안재홍]], [[이상재]], [[홍명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 성향의 조선일보 인물들이 중심으로 추진했다.</ref>]]
 
조선일보는 [[1920년]]에 창립하였으며 [[일본]]의 소위 [[문화정치]]가 실시되면서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총독부]]로부터 허가되었다. 창간 당시에는 [[대정친목회]]를 모체로 [[조진태]]사장으로 시작하였으나, 자금력부족으로 [[송병준]]에게 넘어갔다. [[송병준]]은 자신이 신문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원로 언론인 남궁훈을 사장으로 영입한다. [[1924년]] 남궁훈은 [[민족주의]]자였던 [[신석우 (1895년)|신석우]]가 인수해 민족의 사표(師表)로 추앙 받던 [[이상재]]를 추대할 때까지 사장으로 재임한다 [[1924년]] 이 때는 [[일본 제국|일제]]와 타협적이던 [[동아일보]]와는 달리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띠었다. [[좌파]]와 [[우익|우파]]가 연합한 최대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홍명희]]와 [[박헌영]], [[김단야]] 등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조선일보에 입사하면서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후 계속적인 경영 악화로 [[조만식]]을 거쳐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ref>조선일보 측에 따르면, [[1932년]] 2월에 조선일보 사장 [[안재홍]]이 일제 경찰에 의해 구속당했고 조선일보는 당시 재정악화로 고리대금업자 [[임경래]]가 조선일보 발행권을 인수했다 한다. 그리고 임경래는 6월부터 부사장을 맡아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했는데, 여기서 조선일보 사원들의 반발이 극심해졌고 조선일보 사원들은 협의를 통해 1932년 7월에 출소한 [[여운형]]을 조선일보 사장직으로 추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외일보(당시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했던 [[홍증식]]이 먼저 여운형을 찾아가 중앙일보 사장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조선일보는 [[1933년]] 3월, [[방응모]]를 사장으로 추대하기까지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그 시기에 조만식이 자신의 평양재산을 털어 조선일보를 인수하였고 방응모가 인수하기까지 혼란을 잠재우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사람들 일제시대 편> 참고.</ref> 그 후 보수적인 언론인들이 조선일보사를 주도하면서, 보수주의 관점에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