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검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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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감영에서 관기를 교육하고 감독하는 부서인 교방청(敎坊廳)이 [[고종]] 연간까지 존재하고 있었는데, 최순이(崔順伊, 일명 完子, 1884~1969)라는 무녀(舞女)가 13세 때 진연도감청에 선상기로 뽑혀 올라가 1904년부터 궁중무희로 활동했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그녀는 낙향하여 진주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진주감영이 폐쇄되고, 교방청도 해산되었다.
그후 교방청은 일본인 감독 하에 기생조합 형태로 유지되었는데, 최순이는 [[1918년]]부터 후배양성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녀가 검무를 비롯해 여러 가무를 전승하며 길러낸 제자들은 진주검무 최초의 선구자가 되었는데, 김자진(金子眞,
[[그림:Korean sword dance-Jinju geommu-04.jpg|thumb|200px]]
[[1968년]] 8월부터 후계자 양성을 위해 전수사업을 시작하여, 이윤례, 김자진으로부터 성계옥(成季玉), 정필순, 정금순 등이 제1기생으로 전수를 받았고, 이후 최예분, 강귀례로부터 김연이, 정금순이 전수를 받았으며, 이음전, 김순녀로부터 서정남, 조숙희 등이 전수를 받았다.
이 중 성계옥은 [[1978년]] [[6월 20일]]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아, 진주검무와 전통문화 예술분야에 헌신적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현재까지도 진주검무보존회 회장을 맡아 전수자를 양성하고 있다. 정필순은
|url = http://jinju.grandculture.net/gc/common/id_view.jsp?table_name=GC_O_TBL&local=jinju&tid=40003202
|제목 = 진주검무의 역사적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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