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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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네 전쟁 ===
1674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스웨덴에게스웨덴에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을 공격할 것을 요청하였다. 스웨덴은 이 요구에 따라 1675년 5월 변경백국으로 쳐들어갔으나, 페르벨린에서 패하고 스웨덴령 데민으로 후퇴하였다. 페르벨린 전투는 참여 인원이 600명보다도 적은 소규모 전투였으나, 이 전투에서의 패배는 스웨덴을 약하고 무능력해보이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이웃국가들은 스웨덴을 만만하게 보게 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스코네 전쟁]]이 터지게 된다.
 
이 시기에, 제국에는 점차 금이 가고 있었다. 1675년, 스웨덴령 포메라니아와 [[브레멘]]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오스트리아에게오스트리아에 뺏겼다. 1677년 12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은 [[슈체친]]을 함락시켰고, 1678년 10월 15일에는 [[슈트랄준트]]를 연이어 함락해냈다. 스웨덴의 마지막 서유럽 영토였던 [[그라이프스발트]]는 그해 11월 5일에 함락되었다. 폴란드의 [[얀 3세 소비에스키|얀 3세]]는 이 정복 사업 이후 스웨덴의 막강한 해상력을 두려워 하여 이후의 공세를 중단하였다. 다만 이후에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덴마크와 스웨덴이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눈이 쌓인 험한 북부의 산맥에서도 소규모 전투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이같은 전쟁이 한참동안한참 동안 지속되자, 스웨덴 제국의 국력은 조금씩 깎여갔고, 결국 이 상황을 보다못한보다 못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중재를 자청했다. 당시 루이 14세는 스웨덴이 강력한 동맹국으로 남아있어 주기를 바랐고, 더이상 스웨덴이 소모전에 휩싸여 약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 왕이었던 칼 11세는 그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점령당한 자국의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루이 14세는 스웨덴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평화 협정을 관철시켰으며, 이후 [[네이메헌 조약]]이 체결되었다. 스웨덴은 이 조약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독일 내의 영토 상당수를 되찾았을 수 있었으나, 이후 체결된 [[룬드 협정]]에서 덴마크에 점령당한 모든 영토들을 공식적으로 할양하며 영토를 잃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스웨덴에게스웨덴에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끝난 전쟁만은 아니었으나, 칼 11세는 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평화협상을 중재한 루이 14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을 보였고, 이후 프랑스에 대한 깊은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 칼 11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