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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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고려의 제5대 왕 [[고려 경종|경종]] 이후의 모든 고려의 왕들은 그녀의 자손이다. 따라서 신정왕후는, 6대8대 [[고려 성종현종|성종현종]] 이후의 모든 왕을 자손으로 둔 태조 제6비제5비 [[정덕왕후신성왕후]] 및 8대9대 [[고려 현종덕종|현종덕종]] 이후의 모든 왕을왕(6대 [[고려 성종|성종]] 포함)을 자손으로 둔 태조 제5비제6비 [[신성왕후정덕왕후]]보다 더 많은 왕들을 후손으로 두어 고려 역사에서 가장 많은 왕을 후손으로 둔 왕비가 되는 것이며, 이는 고려 왕실이 [[족내혼]]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는 초반의 왕위 계승 구도가 복잡한 양상을 띤 관계로 태조 왕건의 부인들 중, 확실하게 국조모(國祖母)로 불릴 수 있는 왕후가 없다. 고려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 세력들과 연대하기 위하여 많은 호족 집안의 여식들과 혼인을 한 관계로, 정비만 6명, 후비는 23명을 두었고, 이 왕비들과 그들이 낳은 왕자들은 지방 호족들을 배후 세력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은 호족들 간의 세력 다툼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실제로 장남인 [[고려 혜종|혜종]]이 아들 [[흥화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이복동생인 [[고려 정종 (3대)|정종]]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과정이, 이복형제들 간의 왕권 쟁탈전의 산물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