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국가섭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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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tandard of the Regent of Finland 1918–1919.svg|right|300px]]'''핀란드 국가섭정'''({{llang|fi|Suomen valtionhoitaja|수오멘 발티온호이타야}})은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핀란드 왕국|핀란드]]의 [[국가원수]]다.
 
[[핀란드 내전]]에서 [[백핀란드]]가 승리한 뒤, [[독일 제국|독일]]의 압력으로 핀란드는 왕국이 되기로 했기 때문에 왕을 모셔오기 전까지 임시 국가원수로서 [[섭정]]직이 설치되었다. [[핀란드 의회|의회]]는 당시 [[핀란드 원로원|원로원장]]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를 국가섭정으로 선출했다. 스빈후부드의 국가 지도부는 1918년 가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매제 [[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 공자]]를 왕으로 모셔오기로 결정했다.<ref>http://www.uta.fi/yky/arkisto/suomi80/v18v21.htm</ref> 하지만 독일이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서부전선]]에서 패망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고, 스빈후부드를 비롯한 군주주의자들의 계획 전체가 어그러졌다. [[협상국]]은 신생 독립국 핀란드에 친독 성향 지도부의 교체를 요구했다. 동년 12월 스빈후부드가 국가섭정에서 사임하고 의회는 [[칼 구스타프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을 차기 국가섭정으로 지명했다.<ref>http://www.mannerheiminperinnesaatio.fi/index.phtml?s=18</ref>
 
이듬해 여름, 만네르헤임 남작은 [[1919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초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진보적 헌법학자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에게 143:50으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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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Carl Gustaf Emil Mannerheim 1940.jpg|100px]]
| [[칼 구스타프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칼 구스타프 에밀<br>만네르헤임 남작]]
| 1918년 12월 12일-1919년 7월 25일
| style="background-color: #DCDCDC" | || [[무소속]]